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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없는 감옥..

이 민 2011. 6. 24. 20:48

법정의 글을 읽었다.
늘 하는 얘기지만 나는 법정 내면의 콘텐츠에 관계없이 법정의 가르침을 사랑했다..

마르쿠제가 현대의 살이가 모든 문명의 이기를 갖추어 놓은 감옥이라 표현 했다는..풍요로운 감옥.

문득 생각나는 게 있다..
오래 전에...
정말 할 일은 주어지지 않는데,시간은 널너리 남아 도는데, 내게 어떤 보물(?)같은 능력이 잠재해 있은들 표현해 낼 일거리가 없는데...그럼에도 늘상 바뿌고 피곤했고 재미 없었던 시간을 살았던 날들이 있었다..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란 고작 꽃꽂이를 배우고,수영을 배우고 잡담을 하고 백화점 나들이를 하고...심심하면(심심할 시간이 없었는데도 나는 늘 심심했단 기억..) 온갖 종류의 책을 분별없이 읽었고...(무협소설과 만화만 빼고..ㅎ)
비생산적이고 재미 없는 일거리들 뿐이었고 나는 늘 바뿐 시간들이 지루하다 느끼며 남편의 저녁을 만들었고 아이들의 숙제를 챙겼고--급기야는 아들의 담임 선생님께 <가장 모범적인 엄마>라는 야릇하고 낯 간지러운 칭찬 아닌 칭찬도 듣는--
언제나 정신적으로나 외모로나 멋쟁이이고 싶었고..
정말 비생산적이고 싫었다..
그 때 일이 꼭 필요한 상황을 만났더라면 아마 나는 즐겁게 돈 버는 공부라도 하고 생산적인 일에 흥미를 느꼈으리라..
그리고 눈을 들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을 것도 같다.
꼭 돈이 부족하여, 아님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하는 돈 벌이도 있고 오직 그 자체가 재미 있어서 돈을 버는 사람도 있을 거 같다.
흔히 일 중독이라 표현되는 사람들---나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결과물이 아니라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인 거다...절대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비판하거나 매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나의 성향적인 면에서 어쩜 그런 사람들과 흡사하지 않을가 싶어서 하는 얘긴 아니고...
그 때의 내 상황은 나가서 직장 같은 걸 가질 상황이 못되었다.
자기 성취감 같은 건 아예 머리 속에 있으면 안되는 단어였다..

이야기가 결국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는데..
그 때 나는 산다는 건---숙제라 생각한 적이 있다..(하긴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은 없다)
숙제는 하지 않으면 안되고 특별나게 잘 하지 않으면 칭찬 받기 어려운 거고 안하면 혼나는 거다...두 손 들고 벌을 설 수도 있고..
그래서 나는 언제나,지금도 <산다>의 표현보다는 <살아낸다>의 표현을 잘 쓰고 있고..
인생은 <사는> 면도 있지만 <살아내야> 하는 거다...참 비슷한 말이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음이다.
삶이 힘들고 지루하다 하여 요즘은 유행처럼 자살도 성하는 걸 보면 드는 생각이...'저 사람들은 저렇게 중도에 숙제를 포기해도 되는걸가??...' 이다....살아내야 하는데...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일찍 아깝게 하늘 나라에 간 내 아들을 생각하면....'착한 아이니까 숙제가 많지도 않았고 미루지도 않았나 보다..숙제 끝날 때까지가 나와의 인연이었고 숙제가 끝났음은 나와 육신으로 맺은 인연도 끝났음이지...' 라고 생각하고 슬픔을 이길 수 있었다.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서..
마르쿠제의 말처럼 인생은 역시 감옥이다..에 한 표.
나는 덧붙여.. 방탄 유리벽과도 흡사한, 보이지 않으나 그 어떤 것으로도 탈출이 불가능한 사방벽을 가진 감옥으로 느꼈다.
사방의 벽까지의 거리가 나의 깜양이다..내 내면의 한계이고 진정한 실체란 얘기..거기까지가 내가 살아야 하는 범위다.
그걸 느끼면.. 순간 숨이 막힐 것도 같지만 조용히 심호흡을 하노라면 즐길 수 있음도 생기는 게 참으로 신비한 인생의 묘미다.
이런 등등의 느낌들 때문에 나는 신을 믿기도 하고..
그가(아님 그 어떤 우연이든...무엇이든 좋다..내 인식 밖의 일련의 어떤 것들..)만들어 놓은 그 한계치인 감옥에 도전하는 건 너무나 어리석은 시간 낭비일 뿐더러 성공 확률이 거의 없음을 알아버린 이후에 감히 내가 덤벼볼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어떤 존재의 손길에 의지하게도 되었다..하긴 생각에 따라서는 어떤 면에서는 자기최면일 수도 있는 문제다 ...
누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두고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는거다..결론적으로 모든 것에는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의 발견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은 나름 그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그 지나는 방법을 찾아낸다...
신에 의지하든, 부처님을 찾든,신은 죽었고 힘없다를 느끼고 스스로 도전하다가 포기하든,자기최면에 가까운 기도를 하든,토템이나 샤면이즘에 의지하며 순간을 잊어버리든...결국에 한계에 부딪혀 되돌아 오는 게 인생이다.

이 모든 사유의 과정을 거친 후, 인간이 도달하는 지점은.....
모든 것에 단순해짐이 최고의 덕목임을 깨닫게 되는 거다.
인생이 감옥이건 아니건, 방탄 유리벽이건 아니건..실제로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도 걸림돌도 아님을 발견하고는 그냥 조용해질 수 있는 능력과 내공을 조금씩 가지게 된다...그리고 결국은 어린아이로 돌아간다..
다만...태어날 때의 어린아이 자체로 남아 있음은 미숙이고 삶의 과정과 사유를 거쳐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옴은 성숙이라 부른다.

인생이 감옥이란 법정의 가르침으로 다시 한 번 옛날의 나로 되돌아 가 보았다..
즐기지 못함은 낭비이고 이겨나감은 발전이고 성숙이다.
인생의 가치와 신비함을 발견하기까지만 생각과 시간을 낭비하도록 허용해야 하고 그 이후는 어린아이처럼 즐겨야 한다..
산다는 것---그 이상으로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게 없으니까....

그리고---
천국에서도 나름의 고통은 있을거고 진흙탕이나 감옥에서도 또 나름의 즐거움은 있게 마련이다..
감옥이 온통 다 나쁘지만은 않다는 소리다...어디에 있건 선택과 수용의 문제...
어린아이는 해바라기처럼 밝고 좋은 것을 골라서 찾아내고 거기에 머물 줄을 안다...복잡한 어른이 할 수 없는 단순한 능력..

아침의 헛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