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민 2012. 11. 2. 05:32

어제 가을 소풍을 갔다.

보온 밥통에 밥 담고, 보온병에 누룽지 끓인 물 한 통 담고, 안동 고등어 대가리 꼬랑지 자르고 은박지에 싸고,양념과 파, 콩나물과 같이 생태찌게 할 재료하고, 그리고 김치랑 김 구운 거...말하자면 집에 있는 거 주섬 주섬 주어 담은 것들이다.
가스 레인지, 생선 굽는 석쇠랑 포도 한 송이 커피..앉을 자리(근데 이건 필요가 없었다)를 챙기고 옷 따뜻하게 챙겨 입고..
친구 둘이랑 셋이서...<화원휴양림>으로 중학생의 감미로운 사보타지 마냥 마냥 콧노래 부르고 룰루랄라하면서.
모든 준비는 이 언니가(ㅋㅋ..) 다 할테니 몸뚱이만 따뜻하게 오라 했더니 시키는대로 하고 온 친구들은 역시 이뻤다.

가스레인지랑 석쇠까지 챙기는 나를 보고 남편이 "거 안 될 걸..밥 못 묵으마 고마 한 그릇 사묵고 오라마" 하면서 씩 웃는다
카기나 말기나 혼자 다 들고 가기 무거워 집 앞 친구 차까지 실어 달랬더니 또 얌전히 시키는대로..
쓰레기 분리수거 해 줄 때도, 세탁한 빨래 널어 주는 것도 쓸만 하지만 이럴 때도 쓸만하다 싶고.ㅎㅎ

우리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의 거리다.
수목원으로 가다가 명곡지구로 우회전해서 쭈~욱 가다 보면 남평 문씨(전 전 대구 시장 문희갑씨..) 세거지(이 단어가 맞는지??...모리겠네..)의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 해서 또 쭈욱 가다 보면 화원휴양림이란 이정표가 나온다.
시키는대로 한 5분 또 쭈욱 가면(길이 너무 좋으니까)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산들이 보이고 그 양쪽 산들 사이에 정말 이뿐 팬션들이 나타는 곳이 화원휴양림이다.

우린 따뜻하게 양지바른 나무 식탁에 자리를 만들고
거짖말 조금만 보태면 우리 집 안 방보다 깨끗한 화장실에서 물 퍼 와서 찌게 앉히고 고등어 굽고..
아무리 평지에 자리 잡아도 가스 레인지의 불은 쫌 그렇다 싶었는데 아니다 다를가 관리인이 다녀 갔다.
우리가 아마 너무 얌전하게 보였든지 아님 별 탈은 없겠다 싶었든지 조심하시란 말만 남기고 사라진다.
다음엔 절대 안 가지고 오겠다고 묻지도 않은 약속을 하고 조신하게 행동했다.히~

아!~ 그 맛!!!!
바로 이 맛이야 소풍은...
고등어 구이 생전 처음 먹어 보는듯 하다.
며칠 전 밤 새 허리가 아직 아푸도록 담근 김치도 너무 맛있다...
(배추를 30포기를 집에 와서 욕조에다 소금 절이고 씻어 물 빼고 담았으니...일 너무 잘 하는 것도 언제나 문제다.ㅋㅋㅋ)

어릴적부터의 소풍이 늘 그랬듯이 밥 다 먹었으면 이제 툭 툭 털고 주변 정리 하고 좀 걷다가 오면 그만이다.
오면서의 보이는 이정표가 <마비정>---옛날에 지방을 연락하는 파발마를 준비해 둔 곳이 아닌가도 싶다.
요즘 그 마비정이란 동네에 벽화 골목이 생겼다 해서 주말이면 시끄럽고 복잡한 동네다.
우린 배도 너무 부르고 해서 동네까지 왕복 2.4킬로를 슬슬 걷기로 하고..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동네가 이렇게 가까이 있었나 싶게 가는 길이 너무 이뿌고 정이 간다.
<달성 2>란 대구 버스가 동네 코 앞에까지 오고..

가다가 문득 생각나는 게 예전에 이 곳에 남편의 7촌 아저씨가 살았다던 기억이 나서 남편에게 전화해서 물어 보니 아직 산다고..
매 년 그 곳에서 멀지 않는 시댁 산소에 벌초를 해 주시는 아저씨다.
문자로 받은 전화로 여차 저차해서 여기 왔노라 하고는 동네 꼭대기에 사는 그 아저씨네 집에까지 가서 커피도 한 잔 얻어 마셨다.
아무리 요즘이라도 촌동네 인심은 가을 햇볕 같다.
우리는 그 동네의 아름다움에 홀딱 반한 나머지 혹시 이 동네에 팔 집이나 집 지어도 되는 땅 있으면 알아 봐 달라 하고 팔자 걸음으로 내려왔다.

언제나의 바램은---이렇게 살고 싶은 거.
이렇게 소풍 하듯....
바람따라 구름따라 발 가는대로 유유자적도 하고...
해 뜨면 일어나 해야 할 일 있으면 미루지 않고, 배 고푸면 밥 먹고 해지면 자고..
티비도 전화도 신문도 없는 곳에서 살고 싶은데 주위의 아무도 함께 살아 줄 것 같지가 않다.
이 동네서 한 달 살고 저 동네에서 한 달 살고도 싶은 나는 어쩌면 역마살을 타고 낫는데도 그 살풀이를 한 번 도 못해 본 건 아닐가 싶기도 하다.
아님 전생에서 지 멋대로 살다 온 광대패인지도..
나는 사극을 볼 때마다 젤 부러운 역할이 왕도 아니고 왕비도 아니고 대갓집 마님도 아니고 그 광대패들이다.
너무 가난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것들을 누릴 수도 있는---그게 자유지...
보여지기 위한 자유가 아니라 속속들이 누리는 자유..가진 거 만큼 무겁고 불편한 것을..
밖에서 억지로 덧씌우거나 보이기 위한 게 아니고 안에서 저절로 탄성처럼 나오고 누리는 해방감...
하긴 그 것도 자신이 못 누리면 모든 것에 우선하는 빈곤, 그 자체로 끝나는 형편없는 족쇄가 되기도 하겠지만

날씨는 너무 좋았고 우린 너무 행복했노라...하면서 소리내어 노래 부르면서 내려 왔다.
또 찾아 봐야지...시간과 장소를...
볕을 좋아하는 거 보니 늙긴 늙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