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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있는 그 곳에 내가 있기.

이 민 2013. 2. 12. 13:43


사소하게 괴로웠던 일들을 풀어 가면서 생각나는대로 옮겨 적다 보면 완전 도사 요비링 흔드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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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몸과 마음이 따로 놀 때면 참 괴롭다 싶을 때가 있다.
몸이야 형편상 움직이는 한계가 있지만 이 마음이야 한 순간에 지구를 몇 바퀴를 돌아도 지치지도 않는 요상한 능력이 있지 않은가..
마음이 지치지지도 않고 돌아 다니노라면 묶여 있는 이 몸과 그 몸이 지금 마땅히 해야하는 일들이 몇 배로 너무 힘들고 괴로운 거다.

언제나 모든 일들의 한 가운데로 들어서서 몸과 마음이 함께 하노라면
그 어떤 일들도 그리 생각만큼 괴롭지 않다는 건 경험으로 대강 알고 있다.
그건 마치 집 안에서 보며 느끼는 땡볕과 정작 팔을 걷어 부치고 일하며 느끼는 땡볕과의 차이와 흡사하다.
땀을 흘리며 일을 하면 배실 배실 피해 가는 것보다 차라리 시원해질 때도 있는 거와 같다..
그게 삼매경이라는 거겠지..
그런데 마음이 따로 놀면서 일을 하노라면 정말 미치게 지루하고 싫어지고 힘든 거다.
주인의식이라든가 참여의식 깉은 단어가 이런 법칙 아래서 일들을 좀 수월하고 재밌게 할려고 생긴 건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는 알았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싶을 때는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붙들어 매야 편하다는 사실을..
마음 가는대로 몸이 따라 주지도 않을 뿐더라 전혀 편하지도 않다는 걸...
하긴, 너무 힘들 때 마음으로 이상을 향해 나래를 펴면 행복해진다는 소리도 가끔 듣지만 그 후폭풍은 훨씬 슬프고 힘들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또 다른 이상주의자나 몽상가(?)들은 나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현상을 일종의 현실도피로 생각하고 별로 찬성하지 않는 편이다.
<꿈>과 <몽상>은 전혀 다른 것이고..
꿈은 희망이지 마음의 장난은 아니다.

닥쳐올 불행에 대한 걱정이나 여러갈래의 생각들도 결국은 나타나지 않는 현상에 대한 마음의 장난이다.
전혀 쓸떼없는 에너지의 낭비라는 뜻이다.
내 몸이 있는 곳은 그 어떤 현상이든 마음이 미리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단순하고, 그리고 찾아보면 길이 보인다.
그 길도 마음으로 찾으면 보이지 않으나 몸으로 부딪쳐 찾으면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는 거다.
그래서 하느님도 너희가 감당할만큼의 고통만 준다고 하신게지..길은 어디서건 보이고 찾아서 보이면 가게 되어 있으니까..

인간의 역사가 생긴 이래로 누구나 전전긍긍하는 생. 로. 병. 사...
나에게만 주어진 짐이 아닌데 혼자서 세상 짐은 다 짊어진 것처럼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는 헤프닝이다.

언제 부턴가 확고한 생활 철학이 생겼다..
닥치는 순서대로 거부하지 않고 그 안에서 몸으로 살겠다고..
그렇게 살아 보니 생각보다,그리고 옆에서 보기보다 삶의 무게가 못 견딜만큼 짓눌림은 아니었다.
그리고...결국은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만큼의 짐들은 공평하게 지워지고 있었다.
그리 허세를 떨 것도 없고 아우성 칠 것도 없는 문제다.

가톨릭 신부 중에 노동 사제라는 신분이 있다 한다.
그들은 <노동 삼매경> 안에서 道를 찾는 것이다.
그들이 노동을 하면서 마음으로 다른 세상을 헤맨다면 과연 道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가???

내게 또 다른 꿈이 있다면---(가출과 逸脫, 그리고 정신이 나갈만큼 취해서 마음껏 한 번 뻗어보고 싶은 게 꿈이라 했다..ㅎ)
필요한만큼 노동을 하고 노동한만큼 먹고 누리는, 오직 몸으로 사는 그런 생활을 한 번은 해보고 싶다는 것인데..
이것마져 마음의 장난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남자였다면 이 풍진 세상을 벗어나 이미 했겠지만...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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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번 설을 지내면서 꼬박 12시간을 서서 일했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저녁 6시까지.
외동아들에 시집 온 덕분으로 언제나 모든 집안 일은 혼자 하는 게 버릇이 되어 누군가 거들면 오히려 불편해지는 것도 병이고..
몸이 있는 곳에서 마음을 접고 일을 하니 나중엔 어차피 피해갈 수 없는 상황, 즐기면서 콧노래까지 부를 수도 있었다.(이거야 말로 道通의 경지??..ㅋㅋㅋㅋㅋ)
근데 만약 정말 하기 싫고 어디 여행이나 갔으면 좋겠다고 마음의 말을 들었다면 주리가 틀렸을 수도..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