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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
이 민
2014. 2. 8. 15:04
내가 쓴 시는 다 가짜였어.
그리움이니 외로움이니를 말하려고
눈만 뜨면 죄없는 꽃과 새와 나무,
별이나 달 따위를 들먹였던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절필하였고 두 번 다시
싯줄을 끄적거리지 않았지.
아파트 벽속에서 공장으로 공장에서 아파트 벽속으로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퇴근만 하면서 침묵했어.
그가 시인이기를 포기한 거냐고?
시를 써야만 시인이 아니야.
아침햇살 비쳐 오는 아파트 벽속에서
층마다 깨어나는 사람들과 함께
그는 매일 태초의 첫아기처럼 눈을 뜨지.
그가 걷는 싸늘한 아스팔트 밑에서도
그의 대지는 언제나 뜨겁게 꿈틀거리고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오를 때는
그가그 안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웃고 있을 때야.
연기가 멈추면 그가 그들과 함께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시라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들 마음 속에 살고 있는 거야.
침묵은 그 가장 깊은 곳에 살고 있는 시,
그는 시를 버림으로써 진짜 시 속으로 들어 가서
시 속에서 사는 시인이 된 거야.
단풍나무가 붉을 때만 단풍나무고
은행나무가 노랄 때만 은행나무인가?
나무들이 단풍드는 건, 우리가 하도 그걸 모르니까,
한 번씩 그걸 깨우쳐 주려고 함성을 지르는 거야.
나, 여기 있다, 내 안에 내 진짜 나무가 있다, 외치는 거라고.
우리는 혹시, 애꿎은 시인들에게
진짜 시도 나무도 아니게, 사시사철 단풍이 들어 있는
광대같은 나무가 되어 주기를 바랬던 거 아닐까?
출처 : 숲 속의 빈터
글쓴이 : 해선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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