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한 친구가 있다..가슴 아픈 한 친구.. 내 기준이나 세상 잣대로 보면 참으로 불운에 가까운 길을 걸어 온 친구다. 나는 그 친구를 늘 친구 이상으로 존경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는 편이고 말이 나오면 항상 <내 천재 친구>로 표현한다. 그녀는 명실공히 지금도 천재임을 나는 확신하고 있고..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대학 재수까지 함께 한 친구지만 근래에 더욱 그녀의 가치를 알아 보고 가끔 수다를 함께 떨 수 있는 친구다. 그녀의 눈에는 내가 언제나---나이들어 늙었기나 말기나---키크고 날씬하고 이뿐 멋쟁이다... 한 번 머리에 박히면 아무리 변해도 뇌리에 남아있는 그 모습으로 기억해 내는 인간은.. 참 정확하지 못한 엉터리 잣대를 가진 면도 있음에 웃음 짓는 부분이다...
그 녀의 공간에 들어가면 그 안에선 늘 은은한 악기의 리듬이 나온다. 고등학교 때 그 녀가 음악 듣기 시간에 베토벤의 무슨 곡을 듣기 바쁘게 계명으로 뱉아낼 때 우리 모두는 너무 놀라고 의아해 했을 정도니까.. 그 녀의 아들들이 음악에 천재성을 발휘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싶다.
그리고 언제나 <안단테>를 속으로 외고 다니는 것 같다.. 안단테...안단테...세상의 모든 빠름이 도무지 그녀에겐 맞지 않음이다..
그녀는 우리나라 최고 명문 대학인 S대에서 XX학을 전공했고 미국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그리고 글을 쓴다...늘... 지금은 시력이 나빠 보이지도 않는 자판에다 무슨 설치를 했다며 늘 자판을 두드리며 글 쓰기를 즐긴다. 그녀는 그 놀이를 <불 질>로 표현하고 그 방에는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들어와서 즐기다 간다.. 지구의 저 끝에서도 들락거리는 사람을 보면 가히 세계는 하나임을 절감한다.
학교 조교 시절에 함께 같은 교수 밑에서 공부한 선배와 결혼했다. 서로 너무 독특하고 뛰어나서 짝 마추기가 쉽지 않았던 둘에게 어느 날 교수님의... "고마 니네 둘이 결혼해라.." 라는 말씀이 중매가 되어 함께 공부하고 함께 논문 쓰고 함께 유학가고 함께 학위를 받았던 커플이다.
나는 지금도 그녀의 그 천재성이 고스란히 집안에서 사장되어 빛을 보지 못함이 속 상하고 안쓰럽다. 그리고 농담처럼 얘기한다---"니가 이렇게 썩고 있음은 거국적인 손실..." 이라고...이 말이 늘 나의 진심이다.
암튼... 그 천재 친구는 일찍 병명은 있으나 치유가 불가능한 이상한 눈의 병을 가지고 평생을 그럭저럭 살다가 지금은 거의 실명 상태다. 그리고 그 친구는 그 어떤 세상적인 성공보다 가정이 가장 자기 실현의 최고의 장이라 여기며 모교의 교수자리를 팽개치고 집 안에서 좌충우돌 설쳐대는 남편의 도우미가 되었고 남편 교수의 제자들이 다락방에서 세미나를 열고 공부하면 식사를 제공해 가며 함께 도와주는 일에 재미를 가지고 살았다. 물론 그러기까지는 그녀의 눈 건강도 한 몫을 했으리라... 어두워지면 운전 같은 건 엄두도 못 낼 뿐더러 거의 시야가 막혔으니까..
늙어 남편이 퇴직을 하면 함께 텃 밭이나 가꾸며 살자는 약속으로 양평 산 자락 밑, 전망 좋은 장소에 터를 잡고 컨테이너 박스 집을 짓고 주말이면 남편이 제자들과 공부하고 번역할 때, 본인 스스로 인부를 동원해가며 집을 짓던 그 집을 그대로 뼈대만 남기고 그녀의 남편은 폐암 말기의 환자로 투병다운 투병도 거부한 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놀라운 사실은 투병을 어느 날부터 스스로 거부한 거다... 그 나이에 그럴 수 있을가???
그 때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인생은.. 텃 밭 가꾸다 털고 일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고. 거창하지도 않고 무슨 준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라고....일상의 연결이라고...그저 살다 가는 거라고..
그녀는 지하철을 한시간 반이나 타고 다니며 짓다 만 그 집을 집 짓는 전문가에게 맡기지도 않고 혼자서 인부들을 부리고 지시하며 지어냈다.. 정말 이뿌고 아담한 집을... 언제든 오고 싶으면 와서 쉬다 가라고 열쇠 있는 곳의 위치까지 나에게 가르쳐 줬지만 함께도 무리수구만 언감생심 혼자는...아니지. 마당에 잔디를 깔고 대문이랍시고 표시만 했지 누구나 열고 드나들 수 있는 엉기성기한 모습의 대문 옆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고 그 밑에 남편의 재를 묻고 가꾸며 사는 그녀가 가끔은 나는 너무 신기하고 낯이 설다..
그렇게 남편을 사랑한 걸가???... 아님 뭐지???.. 저 나무가 죽으면???... 이 집은 영원히 팔리지도 않는걸가???...등등의 생각으로. 나 같으면 집을 짓기도 전에 팔고 말았을 것을...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 제자들과 함께한 유작인 방대한 번역본을 아직 남편의 서재라고 꾸민 방에 쌓아 두고 있었다.. 치우고 정리해야지,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엄두가 나지 않았겠지.. 하긴 마지막 본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남편이 애틋했으리라..
두 아들 모두 음악 공부를 한다고 미국에 있다... 모두 결혼은 했으니까 그녀의 짐은 이제 한결 가벼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은 아직 그 녀의 능력을 믿고 마지막 한 방울의 능력까지 다 소진 시키실 셈인지...
그녀의 큰 아들--- 미국에서 오케스트라의 유능한 지휘자의 한 사람인 그녀의 큰 아들이 뇌경색으로 일 년이나 투병하다가 드디어 한국 병원으로 바로 며칠 전에 오게 되었다.. 아...그럼에도 그녀는 언제나 희망 안에 살고 있다..
개인적인 일을 너무 상세하게 많이 쓴 것도 같은데... 나는 그런 그 녀가 늘 너무나 밝고 긍정적으로 그리고 언제나 여유있는 평상심을 가짐에 늘, 지금도 놀라고 있는 것을 쓰고 싶었다...그 녀는 늘, 언제나 지금 바로 이 상황을 관조하며 즐기고 있었다..급할 거 없으니 돌아서 가면 되지...하는 모습이다. 안단테..안단테를 달고 다니는 그 모습으로.. 그냥 살고 있다 그녀는 언제나..
그리고 그 녀의 아들...그 역시 그 엄마의 아들이었다.. 그도 이제 병으로 생활이 본의 아니게 조용해지니까 글을 쓴다. 그의 글 중에 한 마다의 글귀가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하고 있다... 물론 다 아는 말이고 이미 책에서 수없이 반복해 읽은 글이다. "뇌경색, 그건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내가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반응하는가가 문제다... 나는 반드시 이기고 일어 날 것이다.."
어느 날 아침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가 불 질 하는 방에 가서 추적해 들어가면 ㅇㅇ의 방에 갈 수 있는데 가 보라는.. 그녀의 아들의 글이 있었다. 위에 말한 저 감동의 글귀가 있는... 진심으로 다시 놀랐다..그 녀의 그 여유에.. 남편에게 얘기했다..그도 익히 그 녀를 알고 있기에.. 그 와중에 어찌 나한테 ㅇㅇ의 글을 읽어 보라는 전화를 할 수 있을가에 대해... 그 평상심에 대해.. 그 호들갑스럽지 않는 일상에 대해.... 아...나 같으면 어찌 했을가...나는 어디까지쯤 그 녀를 따라갈 수 있을가... 언제쯤이면 그녀의 <안단테>를 이해할 수 있을가...
가끔 알 수 없는 공포심에 휩싸여 다 놓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스스로 <장애인>이라 표현 할만큼 아무렇게나 휩쓸리고 뒹굴 수 없는 감정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나는.. 그럴 때마다 그녀 아들의 말을 가슴으로 외워 본다. '일상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내가 어떻게 그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반응하는가가 중요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