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
정말 건망증이 심해지는 느낌이 정말 별루다.
가끔은 아침에 외출할 때 입은 옷이 생각이 안 날 때도 있다.
기분이 참 더럽다는 얘기다.
내가 무얼 좋아했는지도 몰라지기 전에 적어 보자...
내가 무지 좋아하는 것----
멋부리기와(카린 로이펠트 같은 스타일로 늙어가기)
삐딱구두,그리고 샌들.
커피와 그 향기.
걷기.
그리고 시간과 마음이 합해지면 즐기고 싶은 온천..
(고작 이까짖 것들을 즐길 거리라 줏어 담다니,,,
이 ㆍㆍ!!
도대체 너는 뭐야 ??)
무엇보다 늘상 머리 속에 담아 실천하고 싶은 건.....
연기처럼 가출해 버리는 거다....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인 줄 이미 알고 있다.
왜냐면 나는 여러가지 공포 장애가 있는 조금은 모자라는 인간이니까..
낯 선 곳이 무섭고 낯 선 사람이 무섭고 낯 선 길이 무지 무서운데 어찌 연기차람 혼자 사라질 수 있을가..
완전 인생에 걸림돌 자체이다.
*****
그저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로서는 처음 해보는 엄청난(?) 시도를 했고 해냈다.
일찌감치 고딩 90주년 잔치때 받은 백팩 안에 장갑,모자,선글라스,그리고 마호병에 뜨거운 물,믹스 커피 두개를 넣어 윗층에 사는 후배에게 인냉을 걸었다.
"시외버스 타고 어디든 갈래?"
오케이 사인 후 나서면서 김밥 두 줄을 샀다
아침을 안 먹은 관계로.
리무진 시외버스는 좌석도 승용차 보다 훨씬 좋았고 사람도 별로 없어 둘이 나란히 깁밥을 먹어도 전혀 눈치 볼 일이 없었다.
내 차로 동부 정류장에 가서 차를 하루 세워 둘 요량으로 일단 방어진 가는 차표를 구했는데 한시간 기다리란다.
어차피 목적지가 있어 나온 건 아니니 금방 승차 가능한 경주행 버스를 탔다.
경주 터미널에서 바로 시내버스가 보문호까지 간단다.
보문호에 내려 한바퀴 도는데 두시간은 족히 걸은 거 같다.
보문호의 벗꽃은 정말이지 꿈 속의 환상이었다.
일본의 희데요시가 그렇게 벗꽃을 좋아했다지 아마도,,
중간에 남은 김밥과 뜨거운 다방 커피를 꿀처럼 맛있게 먹고.보문호 끝자락 코모도 호텔 앞에 양푼이 비빔밥이란 밥 집이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둘다 습관처럼 양말을 벗고는 자세로 기분이 무지 편했다.
모양새가 이리 편해도 될려나??...그건 일단은 모르쇠로...
다리도 쉴 겸 양푼이 한 그릇씩...
다음 부터는 가까운 온천까지 하고 가자고 히히낙낙 굳게 약속하고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와서 바로 동부정류장 행..
내 차는 이뿌게 제 자리에 있었다 하루 주차비가 만 원이란다.
정말 뿌듯하고 자신이 생긴다.
무엇보다 계획없이 무언가를 한다는 게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목적없는 삶이 내 삶의 한 목적이니까..ㅎ)
이제 어디든, 동부, 서부, 북부...어떤 시외버스라도 타면 어디든 데려다 줄 것이고
거기서부터는 택시만 타면 원하는 곳까지 갈 수 있고..
원하는 곳에 가면 원하는 것을 즐길 수 있고..
걷든지, 목욕을 하든지, 시장을 돌며 장돌뱅이 흉내를 내든지..
왜 진즉에 이런 걸 시도도 안해 보고 맨날 그 비좁은 승용차 안에서 맴돌고 했는지..
공주도 아닌 것이 노상 공주처럼 차 없이는 아무데도 못가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줄 알았다.
그러니 움직이는 것도 맨날 생각에 머물고 말 때가 많았다.
그리 특별한 일이 없는 주말은 이제 늘 이렇게 보낼 것이다.
윗층 후배가 동행을 못하면 이제 슬슬 혼자 노는 것도 배워야지..
근데 정말이지 내 즉흥적인 시도에ㅈ 즉흥적으로 맞출 수 있는,
그러면서도 둘만이라도 전혀 대화에 공백이 안 생기고 어색하지 않는,
사고하는 것이 한 방향이고 하루 종일을 함께 보내도 피곤하지 않는 짝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참 복이 많고....사방에 그런 친구가 몇 명은 되는 것 같으니.
담 주는 서부정류장에서 해인사 소리길을 갈가...
북부정류장에서 문경 온천을 갈가...
동부정류장에서 방어진 대왕바위를 가 볼가...
7시간 해안길을 타고 속초까지 가 볼가..
이제 이런류의 고민과 갈등으로, 일하는 틈틈이 즐기며 인터넷을 뒤질 생각을 하니 행복하기 그지 없다.
분답거나 시끄럽게 계획하고 맞추고 준비하고 약속하지 않아도 되는 게 우선 무엇보다 너무 좋다.
백팩에 주섬주섬 몇가지만 주워 담아 지갑을 챙겨 나서면 되니까.
미리 웃음이 번진다...좋아서...ㅎㅎ
하루가 모자라면 적당한 곳에서 밤을 보내고 낯 선 곳의 새벽 공기에 옴 몸을 맡겨보는 것도 얼마나 좋을가!!
노상 하는 짓도 아니니 호사를 하고 싶으면 가까운 호텔을 , 돈 아끼고 싶으면 또 적당한 곳을 찾으면 될 것인데 그건 좀 더 경험을 쌓은 후 연구해 봐야겠다.일단 무서우니까.
근데 늘상 가지는 생각인데 잠은 조금은 호사스럽게 자야 한다는 게 평소 내 생각이다.
그리고 그 안에 머무는 동안은 옷 입고 신발 신는 귀찬음을 피해 그냥 그 자리에서 식사도 해결하고 싶다.
한 두달에 한 번쯤 그런 호사를 부리기에는 내가 너무 가난한 건가??
아무 군더더기 생각없이 그 정도쯤은 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내 나이에 걸맞는, 내 살아 온 결론이어야 하는데...거 참..
그 흔한 명품을 좋아하지도 않고, 비싼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화장품을 쓰거나 비싼 여행을 즐기는 것도 아닌데 하룻밤 호텔비쯤은 신경 안써도 되는 나이 아닌가?...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
아뭇튼 나는
봄이 조금 지나기 무섭게 샌들을 신을 것이고
그 끄트머리가 언제일 지 모르지만 외출 땐 할 수 있을 떄까지 삐딱구두를 신을 것이고
그리 요란하지 않을만큼 나름 생각나는대로 멋을 부리길 노력할 것이고
시간과 형편만 되면 목욕삼매나 온천을 할 것이고
혼자라도 어디든 걸으러 나갈 것이다.
그리고 연기처럼 가출은 못하나 지금부터라도 어디든 바람처럼 소리없이 다닐 것이다.
은 못되더라도....
늘 즐겁고 재미있는 편은 아니나 즐기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제야 진짜 즐거울 수 있을 거 같다.
화이팅!!
2016.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