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점심 초대
친구의 점심 초대
요즘 집에 초대 받아 가는 경우는 거의 없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그럴 일이 생기면 바깥에서 식사를 하고 집에서는 차 한 잔의 초대도 흔치 않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가끔은 친구나 후배나 선배,남편 친구들의 마눌님등을 초대하여 된장 끓이고 나물 무쳐 밥 먹고 커피 마시기를 좋아한다.
오직 내 시간과 정성의 문제지 별로 잘 차리지 않아도 편하고 푸근한 자유가 있으니까,,,
경북여고 동기 7명이 모이는 소모임이 있다.
조금 피상적이긴 하지만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모임으로 어지간한 문제에서는 기분 나빠 할 것도 없이ㅡ어쩌면 나만의 느낌일 수도ㅡ
두런 두런 온갖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의 허세를 빌려 말하면
각자의 집에 숟가락이 몇개 있고 남편들의 식사 버릇과 잔소리의 농도 정도 까지를 알 수 있는 그런 모임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특성상 각자의 기질들은 모두 나름 색갈이 뚜렷하고 생활 방식도 엄청 다른 진주알 같은 개성들인데도 찰떡 같이 붙는 걸 보면 시간이라는 가치를 넘어서는 기준의 가치는 역시 없다..라는 결론이 날만큼,,,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 장미가 네게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그 꽃을 위해 니가
소비한 시간들이야' 라고,,,
아뭇튼 소비한 시간들이 가꾸어 낸 묘한 색갈들의 소중하고조화로운 모임이다.
오늘 우리를 초대한 친구는 식사 전에 와인 한 잔씩을 따루어 건배하면서
"내가 오늘 친구를 초대한 이유는 집도 옮겼지만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힘 들 때마다 언제나 옆에 있어 내가 걸어온 길에 교각처럼 나를 건너게 해주고 힘이 되어 주어 너무 고마워서..."라며 목 메이는 끝을 맺었다.
덕분에 우리 다같이 조금 숙연해지고..
교각처럼?,,,
진짜....
물은 쉬임없이 흘러 가고 있지만 자갈은 남아 쳐지듯이
정신이 없을만큼 빠르게 흐르는 시간들 안에서도 자갈처럼 남아 쳐지는 건 결국 친구들인가 보다.
사회에서 잡다한 서로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만나게 된 그런 모임이 아닌
어린 시절의 순수한 공통의 분모를 함께한 친구들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손 안에 넣어 만지작 거려 윤이 나는 그런 자갈의 감촉만큼 매끄럽고 윤이 나는 거 같다.
어지간한 찌꺼기와 먼지는 거기에 붙어 있을 수 없고 떨어져 나갈 만큼 매끄럽고 윤기 있는 관계,,,
나만 하더라도 아이들의 학교 모임, 남편 친구들의 부인 모임 등..
여러개의 모임이 만들어졌으나 어느 순간 스스로 회피하여 사라지고
결국은 학교 생활을 함께 한 친구들만 남아 있는 걸 보면..
이것저것 따지고 비교하고 서로의 언어나 평가에 신경쓰고 맞추어내야 하는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는 내 개인적인 성격도 한 몫은 되지만,,,
친구의 초대는 정말이지 너무나 정성 스러워서 감동이었다.
그 정성을 폰에 살짝 담긴 했는데 여기에 붙여 올릴 능력이...
아이 둘 씩을 키우는 며느리 둘까지 동원해서 대강 눈으로 보기에 외식을 했더라면(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성이었지만) 신라호텔에서의 한끼 정심값이 되는 15만에서 20만원짜리는 되는 식사였으리라..
친구가 직접 마지막 후식으로 만든 미나리 리조또까지....
늘 집에서 외국바이어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한다는 친구는 세계의 음식을 요리학원에서 두루 섭렵한 솜씨를 우리들을 위해 발휘한 것이다.
그리고 커피..
친구는 내내 흐르고 있는 차이콥스키의 곡의 제목과 내용을 가르쳐 주고 있긴 하더라만 과연 식탁에 앉아 있는 나머지 친구들이 듣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수다만발 안에서 어쩌면 잡음으로 들렸을 수도..ㅎ...
차이콥스키의 '6월의 뱃놀이' 였다.
나는 내가 고른 큼지막하고 하얀 커피 잔 가득히 따루어진 설탕 안 든 마끼아또의 뒷 맛이 제일 좋았던 기억..
그냥 이름이 이뻐서 마끼아또란 버튼을 눌렀을 뿐이고.ㅎ
친구의 집엔 부엌 싱크대 위에 커피콩만 넣으면 입맛대로 나올 수 있는 커피 머신이 딸려 있었다...엄청 비싼 것이라는,,,
어느 현대 영화 안에서도 보지 못한 것이었으니.
커피맛을 잘 모르는 내가 그 기계가 부러운 것도 참 웃기고,,
나는 평소 내가 가지지 못한 타인의 어떤 걸 부러워 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냥 그대로 좋다고 느낄 뿐이지 그게 너무 좋아 내 것으로 하고 싶다는 욕심은 없는 편이다.
그는 그대로 좋고 이는 이대로 좋다는...
좋다고 생각할 뿐이지 그에 대한 욕심은 없는 거다.
그런데...
그런데...부러웠다.
그 커피 머신과
집 크기에 비해 단순한 색조와 디자인의 심플함,,
몇 안되는 가구 배치와
무엇보다
수성 못과 신천과 앞 산이 다 보이는 시원한 방의 전망이,,,
친구의 말이..
"이 번엔 애들이 엄마가 원하는대로 집 안을 꾸미도록 아버지 잔소리 하시지 말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돈 걱정 말고
엄마 맘대로 하라고 해서 마지막 집이라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대로 했다" 한다.
그런다고 한 줄의 잔소리 없이 수리비로서는 너무 큰 돈을
선뜻 내주는 그 남편도 부럽고,,,
방 하나를 튀워 거실과 시원하게 연결 되도록 해서 그 방은 친구가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글도 쓸 수 있는 공간으로 수성과 앞산을 볼 수 있도록 한 것도 너무 좋고,,,
하긴 애시당초 나에 대한 신뢰가 없었던 김 대홍 덕분에 아예팔자 편한 집순이가 된 이 명희가 아니고 남편의 엄청난 신뢰로 남편의 회사 일까지 관여하고 있는,
언제나 모든 일에 역할이 많은 그 친구가 과연 하루에 얼마만큼을 그 장소에서 즐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부엌의 싱크대와 아일랜드.
식탁의 배치도 너무 맘에 들었고..
무엇보다 집 안의 인테리어 색갈의 톤과 단순함---
(나 같으면 차콜 대신 조금 톤다운된 올리브 그린의 색으로 대신 했을 수도? )
회색이 섞인 차콜과 상아빛의 조화, 그리고 같은 색갈로 맞춘 침대 같은 소파, 쿠션..등 모두는 그 색의 연결들이었다.
정말이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색의 연결이란...
나는 내 친구가 이렇게 단순한 감각을 가진 걸 처음 알았다.
'가장 뛰어나고 멋진 장식은 단순함과 빈 공간' 이라고 평소 생각 하는 나는 "너거 집 분위기 너무 좋다...".를 연발했다.
매사에 완벽해야 하고,
모든 걸 아름다운 말로 시인답게 표현해 내야 하고,
어디서나 자기에게 분명한 역할이 있다 생각하고
그 역할에 너무나 충실해야 마음이 편하고,
실수하면 안되고 ...
암튼 대강 사는 나로서는 무척이나 본 받기 벅차고 복잡한 친군데,,
그래서 모든 장식도 조금은 복잡 할 거라고 생각 했었다.
그런데 차라리 깨끗하고 단순한 품격이 보였다.
하루종일 혼자 있어도 별로 심심하지 않고 며칠을 아무도 안봐도 그리 외롭게 느끼지 못하는 나는 언젠가 부터 그냥...
그냥,
진짜 그냥,,,
그야말로 그냥,,,살고 싶은데
오늘은 내 친구와 같은 톤의,
그 4분의1 정도 되는 크기만의 집에서 홀로 살아보고 싶다는,,
가끔은 공기도 무겁다,,,!!
2015년 4월 어는 햇살 좋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