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민 2021. 8. 22. 06:00

습관된 일상으로
커피 한잔을 내려와서 침대 헤드를 등받이로 허리에 쿳션을
받치고,,, 어제 밤에 덮어 둔책을 읽든지,
하릴없이 멍 때리고 있다.
그 안에서 더러 가끔 스치는 얼굴들이 있다.
대부분 연락이 안되는 지나간 얼굴들이다.
그리고 또 대부분은 그립고 궁금한 얼굴들이다.

오늘은 박 주영이란 아이가 한번쯤은 더 보고 손 마주 잡고
눈 빛 나누고 싶은 얼굴로 나타난다.
그 자그맣고 별로 볼품없는 아이는 지금 어디서 머할가,,
제원이가 간 지 꼬박 이십년이구나.
지 꿈에 다 헤진 작업복을 입고 나타나
말없이 사라졌다면서 제원이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냐면서 내게 연락한 그 여자아이,,,
헤어진 남친의 안부를 그 엄마인 내게 묻던 그 아이.
그 애도 이제 오십이 다 된 나이에 이르렀구나,,,

참 시간이란,,,,,!!
얼마나 무심하고 차갑게 흘러 가는가.
나는 그 무심하고 인정머리 없는 시간을 참 고마워하며 살았다
내가 해내야 하는 노릇과 역할을 드디어는 내가 아닌,
시간이란 무심함이 나를 떠밀며 살아주고 있단 생각으로.,,
그리고 시간은,
인생의 모든 슬픔과 잔인함을 빗물처럼,,,!!
함께 쓸어가면서 망각의 힘으로 인간을 위로해 주지 않는가.

서른이 훌쩍 넘은 박 주영을 수성못 근처 카페서 만난게
끝이었던가,,,
"넌 왜 시집 안 가,,,?
니가 시집 가는 날 내가 부조금 많이 들고 축복해 주러 가께,,"
라는 내 말을 받아 말 떨어지기 무섭게 냉큼
"어머니, 제원이 같은 애 있으면 어머니가 소개해 줘요"
라며 뱅긋이 웃던 그 작은 아이,,,
매번 명절이 되면 신토불이 농작물이나 과일 같은 걸
보내 오던 아이,,,
내 생일이면 언제나 한 광주리 감을 보내던 아이,,,
내가 감이란 감은 떫어터진 땡감만 아니라면
홍시든 단감이든 삭힌감이든 모조리 좋아한다는 걸
박주영인 아마도 제원이 한테서 들은 게지.
늘 기억하고 모든 종류의 감을 광주리째로 보내던 아이였다.
그리고 가끔은 송이가 작은 은은하고 고급진 향을 풍기는
국화를 다듬지도 않은채 한아름씩 보내던 정감있는 아이였다.

보고 싶고 궁금하다.
시집가서 잘 살고 있겠지.
가끔 내가 기도 안에서 그 애를 보았는데 요즘은 그것도 잊어버리고 사는 나는,,,
가슴이 조용해진 건지
퇴보로 인한 마음의 상실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