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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의 수목원

이 민 2023. 9. 3. 19:31

그리 많이도
또 그리 적은 양도 아니게
비가 내린다.
빗소리가 너무 달콤하다.
빗소리의 유혹을 못이겨
박물관 마당의 비에 젖은
나무들을 보며
커피 한잔의 안식을 누리고
집으로 오다가
방향을 수목원으로 돌렸다.
긴 바지 자락을 넙적하게
두번 말아 올리고
긴 블라우스의 앞자락을
리본으로  묶어 짧게 하고
우산을 들었다.

아~~~
이 느낌
이 기분
이렇게 좋을 수가,,,
드문드문 눈에 띄는 우산 쓴
사람들,,
아직은 긴 시간 더 살아 있을
푸른 잎들,,,
적지 않게 떨어져 비에 젖어있는
노랗고 붉은 색을 띤
낙엽들에 쓴 웃음을 짓게 된다.
어지간히도 성질 급한 잎들,
아님 나무에 붙어 더 이상
살아내기에 지쳤나,,,
성질 급한 면도,
살아 내기가 귀찬아
이왕에 가야 할 길을
급히 나서고 싶은 면도
참 나랑 비슷하다.
아직 좀 더 나무에 붙어
이 상큼한 냄새를 더 즐기지,,

비에 섞인 푸르고 축축한 냄새,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이렇게 편하고
느긋하고
자유로운 시간들이 있었던가,,
못 부르는 노래를 불러 본다.

빗소리는 늘 아름답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든
줄기차게 떨어지는 소낙비든
부드럽게 속삭이는 보슬비든
모든 빗소리는 아름답다.

마음이 허전하고
무언가 몹시 그리웠던 시간들이
넘쳐 흘렀다.
산꼭대기에 오두마니 홀로 앉아 있는 느낌.
바람불고
춥고
밑은 보이지도 않게 깜깜한
산꼭대에서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너무 슬프고 무섭고 불안했다.
그럴때면 나는 자동차 지붕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다.
새벽에 커피 한잔을 들고
비오는 자동차 안으로
기어 들어갔던 기억들,,,
빗소리에 묻히도록 소리내어,
그리고 또 소리죽여 울었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살았다.
나를 사기치며 살았다.
참 시간이란
神의 오묘한 축복이다.
소리없이 차근차근 흐르는
시간안에서 모든 건 녹아 내린다
죽기 전엔 시간 안에서 자유를
찾는 행운을 만날 수도,
아님 그냥 흘려버릴 수도,,,
어쨋든 모든 건 시간 안에
녹아 묻힌다...

아무도 안보이는 빗속에서
나만의 공간을 누린다.
나무와
푸른 냄새와
축축한 공기를 즐기며
걷고 또 걸었다.
등줄기를 간지럽히며
흘러 내리는 땀들,,,
가슴 가운데로 모여 흐르는땀들,
머리에서 얼굴을 거쳐 목으로
흘러 내리는 땀들,,
이 느낌은
고요하고 느릿하게
정신을 함몰시키는 쾌감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좀
불편하겠지만
나는 비오는 날에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의 장례식은 그대로
나를 기억해 주는 파티장이
되면 좋겠다.
엄마가 드디어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았다고
내 아들들이
편히 웃어주면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