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너무 게으른 게 문제다.
늘 생각은 시골 길에서 부터 산과 바다를 가득하게 누비고 댕기는데 몸은 늘 그 한자리에 머물고만 있다.
오늘도 성당 가면서 오후엔 낙엽을 밟아 보리라 다짐 했건만...
간단한 먹을 거리를 가지고 커피 한 잔과 함께 낙엽의 소리를 듣고 싶은지는 참 오래 되었다.
낙엽은 늘....들을 수 있는 사람의 마음에 지혜와 연륜의 속삭임을 남기고 훌훌 떠난다.
피를 토하듯 제 잎을 물들이고 미련없이 또 털어내고 가 버린다.
온 겨울 움추리면서 에너지를 축적해 내 년에 다시 나올 어린 생명을 위해서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일 거다.
우린 또 언제나 그 빛갈의 아름다움과 그 쌉쌀한 분위기만 즐길 뿐 나무의 고통엔 아랑곳이다.
그 고통의 색갈 역시 피 빛이 아닐가...싶어진다.
하긴 고통은 언제나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거지....슬픔을 하나 가득 안은 아름다움으로..
어미같이 붙이고 살던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낙엽은 또 무슨 약속한 장소라도 있는듯이 바뿐 소리를 내며 날아 가던지 구불며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
우리가 사라져 주어야 내 년엔 더욱 아름다운 연두 빛의 어린 싹이 나온다는 걸 말해주며 서글푸지만은 않는 희망을 주고 떠난다...영원히...어디론가...어쩜 그들만의 어떤 모임의 장소가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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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수채화처럼,수필처럼 가볍게,그리고 자유롭게,가끔은 경계 없이 뒤섞여 살고 싶어 하지만
그리 가볍게도 못하고 자유롭지도 못하고 경계 없이 뒤섞이는 여유도 없이 살고 있다.
그렇다고 크게 후회하거나 뒤돌아 보며 살고 있는 것도 또한 아니다.
그냥...누구의 눈에 비쳐지는 데 촛점 맞추지 않고,또 누구의 기준과 가치에 부합 되고자 닿지도 않는 용을 쓰는 어리석음에서 겨우 벗어나 나만의 존재감의 무게로 버티고 있다.홀로 잘 나고 있음이다.
시간 맞추어 태어나고 떨어지고 뒹굴며 흩어지는 낙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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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갔다.검진.
"수술은 언제 받으셨나요?.."----주치의지만 본인 만큼은 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의 가정 아래 본인인 나한테 던진 질문인데...
정작 본인인 나의 대답은 "잘 모르겠는데요...제가 확인해 볼가요?"...남편에게 물어 보겠다는 말이다..
왜 이러냐 진짜...나는 정말 내가 목숨을 담보한 암의 수술 날자를 잊어 버리고 늘 희희낙낙을 살고 있다.하긴 요즘 암으로 죽는 사람 드물더라는 용기있는 단정을 늘 가지고 있으니 잊어 버릴만도 하고..
"아니 됐읍니다..여기에 있읍니다.." 하면서 자기 개인이 간직하고 있는 낡고 두꺼운 노트를 펼친다.
그 의사 선생님이 정년으로 몸 담고 계시던 대학 병원을 그만두고 이리로 옮겨 오심에 따라나서는 환자에 대한 배려인지 습관처럼 본인의 환자에 대한 기록을 보유하고 계시는지는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얼마나 편하고 다행인지 모르겠다.
"모른다는 얘기는 잊어 버리고 살고 있다는 얘기이고 잊어 버린다는 사실은 그만큼 스트레스 안 받고 산다는 얘기니까 좋은 점입니다"
조금은 쑥스럽기도 하고 부끄러워 하는 나에게 해 주시는 위로(?)인가 보다.
"선생님 만약에 말이예요....만약에 제가 다른 장기에 암이 전이 되었다면....꼭 수술을 해야 합니까?...그냥 같이 살면서 늙어 간다면 얼만큼의 수명이 될가요?.."----정말 이제는 검사, 수술, 입원 같은 거 안하고 싶어서 물었다 진심의 감정으로...
"한 일년, 아니면 이년?...".
"그건 너무 짧아 안되겠군요...제 희망 수명이 75세(얼마 전까지만 해도 70세였는데 어느새 그것도 늘어 있었다..) 정도이니까 그 정도만 함께 살 수 있으면 저는 그냥 살고 싶어서...."..하긴 짧다는 그 자체가 애매한 개념이지만.
"수명을 누가 맘대로 하겠읍니까 마는 의사의 윤리로 알면서 환자가 원한다고 방치할 수는 없죠...만일 그렇다면 수술 하셔야 합니다.."---의사 선생님의 정색을 한 말씀이다.누가 뭐랬나..
하긴....아직 검사 결과도 모르는데....근데 왜 이리 귀찮으냐....옛날에 태어 났으면 그냥 모르고 살다가 죽는 그 순간이 자신의 명으로 믿고 살텐데....난 늘 너무 발전하고 있는 의학과 문명의 이기가 무서운 사람이다.
그러나 사실이지 나는 그 발달된 의술이 없었다면 진즉에 첫 아이를 낳으면서 사라질 생명이었다.
첫 아이를 낳을 때 <산욕열>인가 하는 걸로 죽을뻔 한 생명이다.
나는 그 때 사람의 몸 안에서 그렇게 많은 피가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야말로 덩어리 피를 쏟아 내었다.
그리고 내 몸이 땅 저 깊은 곳으로 내려 앉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 이후로도, 이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몇 번을 더 죽어야 했을 목숨이었다....
근데 나는 왜 늘 내가 참 건강하다고 생각하며 사는지...어떤 면에서는 참 스스로 이해할 수없다.
단 한번도 나는 내가 몇 번을 죽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머물지 않았고 늘 건강하다는 착각으로 살고 있는 게 도무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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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투병>이란 단어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 하면서 스스로 굉장한 의지에 대한 자부를 갖는 것 같고 그 시간들을 길고 긴 터널처럼 표현하며 뒤따라 오는 같은 병명의 후배들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는양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 놓곤 한다.
그저 모든 건 지나가는 시간이라 생각하며 흘려 보내고 마는 나같은 사람에겐 그 투병이란 단어 자체가 그저 생소할 뿐이다.일상 살이의 또 다른 한 부분일 뿐이지 무에 그리 크게 소리낼 일인가..나타나는 양상은 천차만별이나 다들 거의 대동소이한 내용들의 살이들이지..
자신의 부주위나 게으름으로 병을 가지게 되었고, 병원에 가고,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약도 먹고 생활 습관을 고칠려 노력하는 것도 내 살아가는 한 부분이라면 뭐 그렇게 크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남다른 특별함 처럼 이야기를 엮어야 하는 이유가 없음인데...그러다 병에 져서 죽음에 이를 수도 있겠지..다른 모든 사고들처럼..다들 그렇게 살다 가는거지..누가 섭리를 이길 수 있을가...그리고 섭리는 늘 내게 좋은 것을 주고 결국은 아름다운 것이라 믿으며 살고 있다 나는.....언제나 그게 나에겐 최선임을 감사히 여기며.
모든 사람들은 다 각자의 기준과, 체질과, 생활 습관, 사고가 다른데 무슨 일률적인 효과를 가진 수학적인 투병 공식이 있을라나...그럼에도 사랍들은 모임도 가지고 각자의 먹거리와 체험에 대해 토론을 하고 더러는 글자로 남기기도 하는데....본인 아닌 타인에게 무슨 효과가 있을가??...
나는 이런류의 모든 시끄러움이 싫다.이 역시 혼자 잘났음인가??..후후...그렇다고 하면 할 말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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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되어진다면 아직 조금은 더 살고 싶고,또 더 살아서 꼭 해야할 일이 남아 있는 것도 같은데, 그러나 그 또한 부질없는 욕심이나 집착에서 비롯된 것임도 알고 있다....
내 몫을 다 살아 더 이상의 시간이 필요 없어졌다면...복이지....
내일 세상이 끝난다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내일 내가 갈 일이 생기더라도 오늘은 오늘을 살아야지..그래 그러자!!
201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