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사이인 나부자 씨와 최고봉 씨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거액의 자산가이고 자녀도 셋 씩이다. 하지만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이 정반대다. 나부자 씨는 죽기 전에는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 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최고봉 씨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재산을 세명의 자녀에게 꾸준히 증여하고 있다.
과연 나부자 씨와 최고봉 씨 중 누가 자녀에게 세금을 적게 내고 더 많은 재산을 물려줄 수 있을까?
◆법규정상 증여가 유리한 부분 많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상속세를 내야 하는 피상속인은 4340명이었다. 이들이 상속받은 재산은 8조5735억원, 납부한 상속세는 1조5464억원에 달했다. 같은 해 증여세를 납부할 의무가 있는 사람은 9만6654명이었다. 이들이 증여받은 재산은 11조563억원, 납부한 증여세는 5조4588억원이었다.
이 통계를 보면 1인당 평균 증여받은 재산이 상속받은 재산보다 금액상으로는 적다. 그러나 재산을 사망 이후에 자녀에게 상속하는 것보다 생전에 사전 증여를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자산가들은 재산을 상속하지 않고 생전에 자녀 등에게 증여를 하는 것일까?
유찬영 세무법인KMP 세무사는 "현행법상 증여세나 상속세나 세율이 동일하기 때문에 어떻게 재산을 물려주든 내야 하는 세금은 같아 보이지만 그 방법에 따라 실제로 내야 하는 세금은 다르다"며 "몇가지 법규정으로 인해 상속보다 증여가 유리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전 증여를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우선 상속세와 증여세의 세율은 같지만 그 방법에 따라 세금을 부여하는 기준이 다르다. 상속세는 피상속인이 남긴 상속재산 전체를 기준으로 상속세를 계산한다. 증여세는 증여받은 사람이 증여받은 금액을 기준으로 세율을 적용한다.
상속세와 증여세는 모두 누진세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재산가액이 클수록 세금도 커진다. 재산 일부를 배우자나 자녀에게 나눠 주게 되면 증여세는 증여받은 사람을 기준으로 과세하기 때문에 과세금액이 낮아지게 돼 세율도 낮아진다.
나부자 씨와 최고봉 씨를 비교해 보자. 두 사람 모두 30억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을 때 나부자 씨의 경우 상속을 하면 50%를 상속세로 내야 한다. 반면 최고봉 씨는 이 재산을 자녀 3명에게 증여했기 때문에 30%의 증여세만 내면 된다.
물론 이 같은 세제혜택을 보기 위해서는 사망시점으로부터 10년 전에 재산이 증여됐어야 한다. 10년 전에 증여한 재산에 대해서는 증여 당시에 증여세를 납부하지만 10년 이내 증여의 경우에는 향후 상속재산에 포함된다.
◆재산 10억 이하 땐 상속이 유리
10년 이내 증여 시 상속재산에 포함되지만 그럼에도 상속보다 증여가 유리한 부분이 있다. 상속 당시 금액이 아닌 증여 당시 금액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5년 전 부동산을 증여하면서 당시 시세인 5억원으로 신고했는데 사망 시점에 증여한 부동산의 가격이 10억원이 됐다고 하자. 이 부동산을 증여하지 않았다면 상속재산은 10억원이 되지만 사전 증여를 한 만큼 상속세를 계산할 때는 5억원으로 친다.
그러나 모든 증여가 상속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기본 공제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나부자 씨와 최고봉 씨의 재산이 10억원 정도였다고 가정해 보자. 상속세는 기본공제가 5억원이고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는 10억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증여세에 대해서는 기본공제가 없다. 따라서 증여했을 경우에는 각각 10%의 증여세를 내야 하지만 상속했을 경우에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유찬영 세무사는 "상속 재산이 10억원 이하인 경우 세금만을 고려한다면 사전 증여보다 상속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상속・증여 신고 안 하면
상속 또는 증여가 있는 경우 신고 납부 기간 안에 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하게 된다. 상속세는 상속이 개시된 날의 다음달 1일부터 6개월 안에 신고 납부해야 하고, 증여세는 증여를 받은 날의 다음달 1일부터 3개월 안에 신고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국세청에서 검증에 나서기 때문이다. 물론 완벽하게 신고를 해 납부하면 더 이상 문제는 없다.
국세청은 납세자가 고의 또는 실수로 신고하지 않은 재산을 발견하더라도 평생을 두고 과세를 하지는 않는다.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시효기간이 있는 것. 이를 제척기간이라고 한다.
상속세와 증여세의 신고 납부 기한에는 차이가 있지만 제척기간은 신고기간이 지난 시점에서 계산해 10년이라는 점은 같다. 아예 신고를 하지 않거나 허위로 신고했다면 제척기간은 15년으로 늘어나게 된다.
신고 누락과 허위 신고의 차이는 어떻게 구분할까? 결국은 상속인의 상속재산 인지 여부와 결부된다. 허위 신고는 ▲신고를 하면서 거짓으로 부채가 있다고 신고해 공제를 받은 경우 ▲등기나 등록을 해야 하는 재산을 상속이나 증여를 받고 등기나 등록을 하지 않은 경우 ▲예금ㆍ주식ㆍ채권ㆍ보험금 등 금융 재산을 신고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부정한 방법으로 상속세 및 증여세를 포탈한 경우에는 그 사실을 알게된 날부터 1년 안에 세금을 과세할 수 있다.
유찬영 세무사는 "사기 등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상속세나 증여세를 포탈한 경우에는 기간에 관계없이 국세청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언제든지 상속세나 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게 돼 있다"며 "사실상 제척기간이 없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세법상의 사기 기타 부정한 방법이란 ▲제3자 명의로 돼 있는 피상속인이나 증여자의 재산을 상속인이나 수증자가 소유하고 있거나 자기 명의로 실명 전환한 경우 ▲피상속인이 계약을 한 후 명의가 이전되고 있는 과정에 상속이 일어나 그 재산을 상속인 명의로 이전한 경우 ▲국외 재산을 상속받거나 증여받은 경우 ▲등기나 등록을 하지 않는 재산, 즉 유가증권ㆍ서화ㆍ골동품을 상속 또는 증여받은 경우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