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니다..
진짜 이건 아니다...
어찌 저럴 수가...
그러고 보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책임감 없는 이기주의인가 보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어떤 것으로든, 마땅히 져야 할 책임으로 관계 되어지고 사슬처럼 얽혀져 있는 유기체인데 어찌 가책없이 그 사슬을 끊어 버리고 기어히 나 혼자 가져야 할 가치가 도대체 무엇일가..
마르틴 부버란 사람의 책에서 읽고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본 귀절이 기억 난다.
"사랑은 너에 대한 나의 책임" 이라는..
그 <너>라는 범위 안에는 스스로의 생명도 포함 되지만 나에게 지어진 책임을 다해야 하는 모든 객체를 말함일진데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지..
피어보지도 못한 그 꽃들의 영혼들은 지금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할가..
지나고 보면, 어쩌면 모든 고통은 살아 있는 자들의 삶의 무게로 침잠될 뿐..
그렇게 스스로 죄책감의 가학으로 영문 모르는 벌을 받는 것인지도..
죽은 자들은...
죽을 수 없어, 살아낼 수밖에 없는 산 자들을 오히려 위로하고 있지나 않을런지..
살아 있는 우린 당치도 않는 그 <만약에..> <그랬다면..> <그러지 않았다면..> <이렇게 했다면..>이라는 가정 때문에 언제나 지옥을 헤메게 된다.
제발 어제의 회한으로 오늘을 지옥으로 만들지 말고 내일을 짓밟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교육이란 게 이성이 감정을 이기도록 훈련되어지는 것이라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그런 합리가 통할 리는 없다.
아니, 차라리 실컷 두 다리 뻗고 통곡하도록 버려 두는 게 자비일 것 같다.
어쩌면 미치지도 않고 숨쉬고 밥 먹고 잠 들 수 있는 질긴 신경줄과 삶에 대한 본능이 원망 스러울 수도 있을거다.
어설푼 위로 보다는 깊은 관심으로 무관심해 주는 것도 진정한 배려임을.. 받아 본 사람은 알고 있다.
어설프게 지나친 관심 때문에 더욱 힘들고 나를 알고 있는 주변을 떠나고 싶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심으로, 가슴으로 부탁하고 싶은 건..
죽은 딸과 아들을, 아빠와 엄마의 영혼이 피폐해 짐으로 더 슬프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마 그들은 말하리라..
"엄마, 아빠...제발 나 때문에 지나치게 슬퍼하여 엄마 아빠가 망가지지 마세요...그러면 저는 너무 슬퍼요..." 라고.
아무 것도 욕심내지 않아도 되고 갈등도 없고 평화 가득한 곳에서 편히 쉬려무나..아들 딸들아..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가..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구나...
우린 언제나 봄이 되면 너희들을 기억할 거야...아니, 어쩌면 까맣게 잊어 버릴 거다..언제나 그랬듯이...
그래도 용서해 줘.
아니 절대 용서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