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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이면..

이 민 2016. 1. 29. 06:52

두 달에 한 번씩은 친구 종인씨를 보러 간다.
생활의 한 틀이다.
혈압을 재고, 등등의 약 처방을 받고, 나보다 술을 좋아하는 영감 욕도 하고, 가끔은 손수 뽑아 주는 자판기 커피도 마시고...
그리고 종인이가 권하면 혈액 검사나 소변 검사도 한다.
갈 때마다 이제 이 짓도 그만했으면 좋겠다 싶어하며...
오늘도 묻는다..
"종인씨 나 이 약 안 먹으면 어떻게 돼? 안 돼?.." 라고.
답을 알면서 그냥 또 묻는 거다.
그냥 막연하게 싫을 때가 많아서다.
먹지 말라고 하면 펄쩍 뛰면서 먹겠다고 할 것도..
그러면서 늘 정작 종인씨께는 웃으며 '만수 무강' 하라는 주문을 주고 온다.

오늘은 처방도 받고 혈액 검사를 했다.
간호과장이라는 사람이 와서 피를 뽑는데(언제나 주사 바늘은 아푸고 무섭다..) 종인씨가 뒤따라 와서 온갖 설명을 했다.
"내 여자 친구인데 어쩌고 저쩌고..." 친절한 주절이 주절인데 모두는 즐겁게 웃었다.
근데 그 웃음들 안에서 정말이지 허무룩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았다.
"과장님 이뿐 여자 친구도 있고 좋으시겠어요"---그 간호사의 멘트인데...
마치그 건 나이드신 과장님을 즐겁게 하고자 하는 기쁨조 투의 말투였다.
우리들이 젊었을 때 옆 집 할아버지를 보고 하는 그런 분위기의 소리...하하...
아님 그들의 시부모를 뵈러 갔을 때 던질 수 있는 그들의 배려..

나는 웃고 싶지도 않고 안 웃을 수도 없는 묘한 기분...
생각만 해도 끔찍한 건,
마침 너무 추운 날씨라 다행히 시커멓고 긴 코트를 입고 갔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은 밝고 맑고 따뜻한 날씨였다면 약간의 짧은 미니 스커트를 입었을 수도 있었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들도 잘 입지 않을 미니 스커트를 그들이 말하는 <나이드신 과장님의 여자 친구>가 입었는데 그들은 그 나이든 두 사람을 묶어 기분 좋게 덕담을 하고....

잠시 어쩔 수 없이 허무룩해졌다.
내가 보였으니까.....
몸과 마음이 동일하게 <답게> 살기는 참 어려운 거다 싶음을 새로이 느끼고!!
<답지> 않음도 별로 아름다운 모습은 아닐 것도 같고...
가끔 가끔 내가 보이면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