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이 쓸쓸하다.
어릴 적 밥상머리 가르침은
손등을 맞아가며
숟가락을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세상 문리가 거의 오른 쪽으로 트여 있어
'오른손 주의'는 거칠게 엄격했다.
치열하게 오른 손을 익히는 동안 본래의 나는 점 점 이동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자식의 혼례식장에서 하객들과 악수을 나눌 때
가위 눌렸던 왼손이 용수철처럼 튀어 나와 화사한 분위기를 찌르거나
제삿 날 조상님께 올리는 눈물 담긴 술잔이
향불 위에서
슬그머니 왼쪽으로 돌아 나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식구들 밥상을 차리다
느닷없이 봄빛 어른거리는 물길을 따라 나서고 싶다든지
한 해에 한번쯤은
후미진 세계의 한 모퉁이를 후비듯 들여다 보고 싶은
왼편의 꿈은 말라버린 지 오래다.
나의 왼쪽에는 추억도 사람 그림자도 없다,
가끔씩 뼈가 시리는 까닭은
원래 나였던,
빈 그루터기에서 나는 바람소리 때문일 것이다.
정 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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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함축을 열심히 공부해서 시인이 된 친구다.
노상 나를 향해 하는 소리 --
"진솔하고 자유로운 너의 마음을 조금만 더 다듬고 연습하면 너도 멋진 詩다운 시 아니면 수필다운 수필을 쓸 수 있을텐데 지금은 너무 투박하고 산만하다. 제발 공부 좀 하고 배워라~..." 이다.
나의 대답 또한 한결 같다.__
"지금 알고 있음만 해도 머리 아파..ㅎ
그리고 아무도 내 글을 안 읽어조도 좋고 더구나 글로 나타내 그로 내 존재감을 알리기엔 너무 피곤하고 그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데요? 고로 기양 이대로 살래~" 이다.
결국 나의 게으름을 그럴듯하게 합리화 시켰고 친구도 나의 속 마음을 알고 있다.
친구의 글 중에 특히 내가 좋아하는 시가 바로 이 "왼쪽이 쓸쓸하다" 와 "벽에도 상처가 있다" 라는 詩다.
세상을 살면서...나이가 들면서...
이런 걸 성숙이라 표현해야 할지 어떤 의미의 죽음이라 표현해야 할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도 약간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는 있으나 똑 같은 말일터..
살아 가면서...죽어 가면서...
본연의 내 모습이 없어지는 만큼 내 씩씩하고 허황된 꿈들도 사라지고
어느 듯 빈 구루터기만 남은 내 모습....
사실은 그게 이루어져야 하는 확실한 내 모습이지만,
어쩌면 조물주께서 드디어 그렇게 완성되어지길 바라는 내 모습이지만..
한 켠 쓸쓸해 지는 건...
아마도 바람소리 때문이겠지.....
그리고 할퀴어고 할퀴어도 시멘트로 마감 된 단단한 벽에는 살처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벽에도 때로 희미하게 실날 같은 자국이 남는다..
살아 내면서.....살아 가는 게 아닌 삶을 살아 내면서...
아내는,
그리고 엄마는,
상처가 나지 않는 시멘트처럼 단단한 벽인 줄 안다.
보일 듯 말 듯 실날처럼 난
그 금같은 상처는
가끔 비누로 빡빡 문질러 보이지 않은 듯 하지만 물기가 마르면 또 다시 희미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빛의 강도와 방향에 따라 늘상 보이는 건 또 아니다...
잔금 같은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