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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와 1%

이 민 2021. 5. 16. 12:39

언제나
산술적으론 너무나 적은 수치에 불과한 1% 가 거의
전체인 99% 를 싸 안아 그 99% 안의 가치가 보이지 않게 만드는 크고도 큰 수치가 되어지는 것을 내 안에서
많이 체험한다.

진화론자인 찰스 다원은 인간은 침팬지에서 진화했으며
현대 과학은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자는 거의 99%가 동일하다고 한다.
그러면 그 나머지 1%의 차이로 인간과 침팬지는 함께 살 수는 없는 것이고 소통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면 그 1%는 함께 할 수 없음의
전체 이유가 되고 만다.

인간 삶의 대부분의 행과 불행은 관계에서 비롯되고
그 관계의 행과 불행이
그 적은 수치의 1%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 1%가 각자가 지닌 영혼의 정체성의 거리라
생각한다.
인간과 침팬지가 결코 동일해지지 못하고 함께일 수 없는,,

언제나 육신의 안락함을 찾아 자신을 속일 수도 있는
영악한 인간은
99%의 현실이 주는 충족으로 그걸 만족이라 생각하며
살 수도 있다.
근데 그게 과연 함께 사는 걸가?
영혼의 소통이 주는 희열과 편안함과 만족이 없는데?
침팬지와 인간이 서로 소통 할 수 없음과 동일한 이치다.
가장 중요한 그 1%의 결핍이 심장을 가진 인간을 무생물의 생명을 살게할 수도 있는거다,,,
개인에 따라서는 그 적은 수치인 1%가 거의 전체인 99%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전체가 되기도한다,,

99% 의 충족으로 가장 중요한 1%의 결핍을 느끼지 않거나 외면할 수 있는 사람과,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도 하찮은 수치에 불과한 그 1%의 결핍을 커버하지 못해서 힘들어 하는 사람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보여지는대로 보이는 부분만으로 살 수 있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부분의 결핍과 가치까지를 느끼는 사람과
어느 쪽이 더욱 순수한 면모를 많이 포함한지는 모르겠다.
가치의 기준은 옳고 그름이 없을 뿐더러 개인이 다
다르기도 하거니와
인간은 자신을 속일 줄도 알고 그 기술도 다양하게 터득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으니까,,,
나 와 너를 같은 선상에 놓고 생각하고 말하는 愚를
범하지는 말자는 얘기다,,,
그걸로 슬퍼하지는 말자는 얘기다,,,
침팬지와 인간의 차이인 그 적은 수치의 1% 의 가치가
엄청난 사람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고
그 1%를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또 그렇게
편하고 복된 삶을 누릴만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