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에 한번,
그러니까 일주일에 세번씩,
하루에 두시간씩 ..
이제 막 세상과 눈을 부딪친지 일년이 채 안되는 서한이를
돌보는 행복한 작업을 그의 엄마, 그러니까 나의 며느리가 나에게 베풀었다,,,
서한이는 내 세째인 막내 아들의 둘째 아들에게
입혀지고 이제 세상이 그애를 인식하게 되는 이름이다.
이름이란 얼마나 경외스럽고도 허망한 것인가,,
한 존재에 입혀지는 전부이고
실체와는 또 아무 연관이 없는 것이다.
그 애는 이제 그 이름의 길고 두꺼운 망토와 같은
꼬리표를 온 몸에 입고 세상에 나왔다.
그 이름으로부터 그 애의 자유는 본질이 훼손되기 시작된다.
***
때로는 힘들고,
정해진 시간에 대한 임무의 스트레스로도 다가오는
그 단순하고 복된 작업이 시작된지 이제 몇 달이 지났나 보다.
아마도 칠십이 넘은 내가 이제 한살이 채 안된
하얀 백지상태의 서한이랑 주어지는 시간에 따라 얼마동안은
함께 자라며
함께 세상을 보고
함께 세상에 눈 뜨고 싶어진다,,,,
나는 지금도, 계속, 조금씩 놀라며, 세상에 눈이 뜨여지는
정신과 마음의 나를 향해 놀라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건 참 묘하고 즐거운 기분을 갖게도 한다.
아직도 철 들어지고 성숙해질 수 있는 여백이
내게 남아 있음을 행복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한이와 함께 자라는 나의 내면을 바라보고 싶고
서한이가 나에게 무얼 가르쳐 주는지가 궁금해졌다,,
2022 1 9
나는 도무지 니가 나를 향해 열려있는 그 눈빛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경이롭기까지 하다,,,
오랫동안 나를 향하는 그것이 너무나 맑고 깊다.
나의 저 깊은 마음에 묻혀 있는 모든 것을 다 꿰뚫어 보고
말을 못하는 니가 나에게 할 말이 분명히 있든지
아니면 탐색해 내고 싶은 무엇이 있을 거 같은 눈이다.
너의 영적인 그 눈빛으로
가르쳐 주거나 고쳐주고 싶은 거라도 있는 건지도,,
너는 태어나면서 인간사의 모든 것을 알고 태어났을 것이다.
자라고 말하게 될 때까지 서서히 망각해 나가는지도,,
말을 하면서부터는 니가 알고 있었던 모든 것을 망각의 세계로
보내 버려야만 이제 너도 인간의 무리 중 하나가 되는 거지..
말로 나타내지 못하는 지금은 아직도 너는 神의 영역에 속해 있겠다 싶기도 하다,,,
1 14
서한이는 잠이 올 때가 아니면 울지 않는다.
잠이 오면 슬금슬금 등뒤로 가서 업자고 칭얼댄다.
그 외의 시간엔 언제나 웃는다.
그리고 혼자서도 온 거실을 헤매며 모든 장난감과 책들을
뒤집어 엎고
노래가 나오면 리듬을 타며 엉덩이와 다리를 움직인다.
나는 모든 언어에서 감사의 말을 가장 먼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한이에게 "고맙습니다"를 가르치며
고개 숙이는 흉내도 가르치며 같이 웃고 논다.
이제 서한이는 "고맙습니다 " 라고 말하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웃는다,,,,
어린아이란 얼마나 경이로운가!!
서한이와 함께하며 나는 치유의 시간을 가진다,,
오늘도 서한이는 나를 처음 보는 사람같이
그 깊고 맑은 눈빛으로 탐색하듯 오래 쳐다본 후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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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이가 '어부바'란 말을 어설프게 매끄럽지 않게 말하며
나의 등쪽으로 비집고 다가왔다,,
너무 신기해서 나는 큰 소리로 웃으며 그 작은 몸뚱이를
부서질만큼 끌어 안고 얼굴을 부볐다.
자기에게 생긴 욕구를 어줍잖은 말로 스스로를 표현해 냈다.
'고맙습니다 ' 라고 내가 얘기하면 고개를 꺽어질만큼
푹 숙이며 함박같이 웃는 걸 보면 그 뜻을 이해한건지 내가
하는대로 흉내내며 따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좋은 뜻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세요' 라고 말하면 아직은 두 손이 아닌 한 손바닥을펴서 내미는 걸 보면 그 의미도 알고 있다는 것일게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아마도 보여지는 형태만이 아니고 그 아이의 정신도 보이지 않게 변하고 있음이 보인다.
애들은 너무 신비롭고 아름답다.
애들이 크는 걸 보면 나의 늙음이 차라리 느린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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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서한이를 안아보지 못했다.
이번 감기는 정말 끈질기게 괴롭힌다.
열흘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나를 사랑하며 붙어있다.
기관지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가래처럼,,,
오늘은 몸은 불편해도 서한이를 만났다.
그 녀석이 세상 빛을 본지 일년ㅡ첫 돌이다.
내 며느리는 참 착하고 밝고 고마운 아이다.
비록 인터넷 맞춤이긴 하지만 혼자서 상도 차리고
사진도 찍는다.
서한이는 이제 혼자 서서 몇 발자국씩을 걸었다.
큰 이모가 서한이를 가수 게리를 닮았다 해서 자세히 보니
진짜 닮아서 너무 웃겼다.
지 엄마도 나를 따라 큰소리로 웃고
지 아빠는 잔뜩 성을 내어서 더 웃겼다,,, ㅋㅋ
동한이는 나날이 인물이 아이돌처럼 빛나고 있었고
그 잘 난 얼굴을 보는 내 마음이 안스러워진다,,,
담 주까지는 쉬고
3월부터 서한이 돌보러 가겠다 하니
현선이가 지 엄마 걱정을 했다,,
시 어머니인 내 말이 우선이니 어쩔 수 없지만
지 엄마의 고단함이 걱정이다.
딸과 며느리의 마음을 얼핏 읽은 듯하다.
2 18
서한이
모처럼 불러보는 이름이고 갑자기 생각이 났다.
미남(?)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정말 똑똑하고 다정스럽게 생긴 얼굴이고 눈 빛이다.
추석에 보니 너무 많이 컷고 똑똑해졌다.
참 아이들이란,,,,
나이든 우리가 세월을 따라잡지 못하지만
또 세월은 아이들을 따라잡지 못할만큼 몰라보게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이 참 경이롭다.
금방 학교에 갈 거고 금방 사춘기가 와서
거칠고 예민해 질거고
금방 사랑을 하고
금방 어른이 되겠지.
부디 어른다운 어른으로 자라길 바란다,,
김 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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